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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충북참여연대 심산유곡암자를 찾아서 첫번째. 청도 운문사 북대암을 다녀와서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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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충북참여연대 심산유곡암자를 찾아서 첫 번째
"청도 운문사 북대암을 다녀와서"
-충북참여연대 문화위원회 이승복 회원-
 
*충북참여연대 문화위원회는 올해 한양도성을 총 6차례와 심산유곡 암자 기행을 2차례 진행합니다.
매달 진행되는 한양도성 기행과 암자순례 후기를 연재합니다.
매달 셋째주 토요일 진행되니 관심있으신 회원님들의 참여 부탁 드립니다.
 
415, 참여연대 문화위원회에서 청도 운문사로 가는 날이었다.
청도는 내 고향이다, 아니 정확히 아버지 고향이다. 정작 나는 청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가본 기억이라고는 단 두 번이었다. 첫번째는 4학년 가을로 기억하는데, 많이 편찮으시다는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가셨던 것이다. 거의 60년 전 일이다. 눈을 못 뜨는 할아버지를 뵈었던 장면이 기억에 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감나무 줄기를 들고 왔었다. 동네에 감나무가 무척 많았던 기억이 난다. 다음은 아들이 기숙사 있는 고교에 진학하고 나서 남편과 둘이서 운문사에 갔던 기억이다. 조용한 절이었고, 그 때도 비가 오는 날이어서 들어가보았다가 금세 나온 기억만 난다. 이곳이 운문사구나 하고 점 찍은 정도?
그런데 참여연대에서 청도를 간다고 하니, 꼭 같이 할 일이었다.

아침 6시 반에 형요샘 차를 타고 모임 장소에 갔다. 우진교통 파란색 버스가 이미 와 있었다. 위원장 금희샘이 미리 자리를 정해주어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짝꿍은 김연숙 샘. 아침으로 김밥을 주었지만, 새벽 4시 반에 깨어 아침식사까지 하고 온 나는 그냥 받아 넣어두기만 했다. 연숙샘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갔다. 힘든 시기에 상담을 받아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데, 상담 선생님이 내가 잘 아는 분이라 반가웠다. 청주에서는 대부분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에 동의하며 재미있어 했다. 칠곡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도였다.

운문사 입구로 들어가는 길이 솔바람 길이었다. 가랑비가 내렸지만, 걷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른 절은 대부분 일주문부터 시작하는데, 운문사는 솔바람 길을 지나 절을 담 너머 살짝 보다가 종탑이 있는 문(범종루)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강고문님이 관광해설사에게 해설을 청했다. 해설사님은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운문사를 소개해주었다.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이 쳐진 소나무라 하는 소나무였다. 정말 커다란, 아니 널따란 소나무였다. 막걸리 마시는 소나무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쳐진 소나무는 취한 소나무였다.
독경소리가 들리는 대웅보전을 바라보며 넓은 강당 같은 만세루를 지나 비로전으로 갔다. 현판에는 대웅보전이라 적혀 있었다. 현 대웅보전 이전에 대웅보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비로전이었다. 비로전을 들여다보며 설명을 듣는 동안, 연숙샘이 톡으로 동영상을 보냈다. 대웅보전에서 스님들이 나오는 행렬이었다. 참 보기 힘든 모습을 포착해주었다. 비로전을 보고 난 뒤, 바로 앞에 세워진 삼층석탑을 바라보며 설명을 들었다. 기단에 새겨진 팔부신장(八部神將)을 보며 동서 양쪽 석탑에서 신라인, 화랑에 대한 생각을 했다. 운문사는 화랑이 수련을 하던 곳이라 한다. 다섯 군데가 있었는데, 운문사만 남았다고 한다. 당시 이름은 대작갑사였다고 한다.

오백전 앞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모였다. 해설사님이 그 물빛을 보라고 먼저 안내해주었다. 항상 유지되는 물빛이라 했다. 물길 위로는 극락교가 있었지만, 통행금지 표시가 있었다. 이목소와 보양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주었다. 아직도 이무기는 그곳, 이목소에 있을 것이라 했다. 이목은 배나무이기도 하다. 단어 모호성, 이중의미를 활용한 옛이야기였다.
이야기 듣는 동안 호거산 쪽에서 구름으로 피어오르는 산안개에 눈길을 빼앗겼다.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산안개 멍을 하며 명상에 잠기는 시간이었다.

다음 약속 때문에 해설사님은 떠나고, 우리는 각자 오백전과 명부전, 관음전을 둘러보았다. 가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앞에 작압이라 적혀 있어, 신기했다. 참새와 기러기라니? 들여다보니 역시 신기한 암자였다. 돌 부처상이 가운데 있고, 양쪽으로 역시 돌로 된 사천왕상이 있었다. 부처님도, 사천왕상도 무척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사천왕상이 저렇게 부드럽고 따뜻한 표정인 것은 처음 본다고 함께 감탄하였다. 아마도 다른 곳에 있는 석조상을 함께 모셔다 놓은 듯했다.

다음 꽃산딸이라는 나무가 피운 꽃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꽃구경으로 넘어갔다. 올 봄은 봄꽃들이 너무 일찍 다 피어 버렸다. 그래도 이곳에는 더 피어나고 있는 꽃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너무 이른 꽃들이었다. 등꽃도 모란도 작약도 아직 한 달은 있어야 피어나는 시기인데, 올 봄에는 모두 서두르고 있다. 서둘러 어디로 가려나꽃들을 보면서 화랑동산을 걸었다.

돌아오면서 눈에 거슬리는 돌길 램프를 보며, 왜 저런데 낭비를 했을까 안타까웠다. 서점에 들러 물건을 구경하고, 해우소를 찾았다. 빨간 우산 노란 우산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여유 시간을 보냈다.
이제 솔바람 길을 걸어 나갈 시간이었다. 비 그친 길에서 정말 솔바람이 느껴졌다. 산유화 식당에 가서 버섯찌개로 점심을 했다.

점심 후 버스를 타고 다시 올라갔다. 북대암 올라가는 오르막 길에 내렸다. 정말 가파른 길이었다. 그동안 아파트 계단 오르기 운동을 열심히 했던 덕을 보며 올라갔다. 물론 가장 젊은(어린) 우리 팀 마스코트, 주원이가 가장 앞섰다. 역시 젊은 동환군이 같이 올랐다아주 예쁜 암자였다. 북대암 마당에서 내려다보니, 운문사가 멀리 한 눈에 잡혔다. 산안개가 피어오르는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운문사. 경내가 꽤 넓어 보였다. 우리는 승가대학 구간을 들어가보지 않아, 절에서 반 이상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물을 받아 마시며, 옆에 적힌 글을 읽었다. “사람이 인생을 바친 뒤에 남는 것은 모은 것이 아니라 뿌린 것이다동감! 일단 손에 있는 물부터 뿌려보자~ 했지만, 정말 내 마음에 와 닿는 문구였다. 나는 이제 내게 있는 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뿌리고 세상을 떠날 것인가
그 자리에서 복대암 바위를 올려다보았다. 멋진 바위였다. 바로 위에 칠성각이 보여 그 쪽으로 올랐다. 이제까지 보다 더 가파른 계단을 올라 칠성각에서 다시 운문사와 복대암을 내려다보았다. 벽화를 보니, 다시 그린 지 오래되지 않은 그림이었다.

내려와서 북대암 앞에 모여 앉았다. 북대암이 운문사가 지어지기 전에 먼저 자리잡은 곳이라는 강고문님 설명을 들었다. “북대암운문사로 삼행시 짓기 시간이었다. 모두 기발한 시들을 지어주었다. 망설이다가 내가 맨 마지막에 손을 들어 운문사로 삼행시를 지었다. “운이 다할 때까지,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의외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마치 육십 년 전 문학소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가파른 길인만큼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에 비해 무척 짧게 느껴졌다.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내려오는 길을 더 조심해야 한다. 나름 조심조심 내려왔다. 오를 때 가장 앞장섰던 주원이가 내려가는 길에 다리가 꺾여 잠시 걱정하였지만, 금세 적응하여 또 앞장서 내려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선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다리를 풀었다. 평소 버스 안에서 잘 자지 못하는 나도 잠시 졸았다. 졸다가 놀다가 하다 보니, 어느 새 청주 도착이었다. 날이 길어져서 아직 밖이 밝아서 좋았다내 기억으로는 세번째로 간 청도. 다른 여행길보다 내게는 가장 잘 기억될, 뜻깊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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