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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기행 후기] 한양도성 제3구간 흥인지문구간과 창덕궁, 창경궁 답사를 마치며

  • 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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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충북참여연대 문화위 역사기행
한양도성 제3구간 흥인지문구간과 창덕궁, 창경궁 답사를 마치며


-충북참여연대 문화위원위원 이운우-

*충북참여연대 문화위원회는 올해 한양도성을 총 6차례와 심산유곡 암자 기행을 2차례 진행합니다.
매달 진행되는 한양도성 기행과 암자순례 후기를 연재합니다.
매달 셋째주 토요일 진행되니 관심있으신 회원님들의 참여 부탁 드립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이었다. 그때 이름은 창경원이었다. 반세기 만에 그 자리를 다시 찾았다.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 없겠지만 감회가 새롭다.  

동물원에 갔을 때 마침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살랑살랑 흔들어 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께서 “몇 번 와봤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 본다.”라고 말씀하시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때는 왕궁이었는지도 몰랐다.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이다. 수강궁이란 세종 즉위년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이다. 창경궁은 우리나라 역사만큼이나 많은 시련을 겪으며 버티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명정전은 왕이 정사를 돌보던 곳으로 조선왕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모든 건물이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지붕 처마의 곡선미가 최고다. 어쩌면 저렇게 모든 처마 끝이 부드러운 선으로 파란하늘 끝에 걸리도록 만들었을까. 서양의 건물이 직선이라면 우리건물은 곡선이다. 직선은 획일적이고 딱딱한 느낌이나 곡선은 포용미와 정감이 흐른다. 온화한 할머니의 미소 짓는 입꼬리 같다. 한손으로 살며시 잡아 올린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자락이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사각사각 소리까지 정감을 주는 한복의 선이 궁궐의 처마 끝과 같은 곡선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곡선을 우리는 지키지 못했다. 수많은 외적의 침입으로 불타 소실되었지만, 선조들은 끈기 있는 민족정신으로 재건하고 또 재건하였다.   

  1909년 일제는 우리 임금이 기거하던 창경궁을 동. 식물들이 있는 유원지로 전락시켜 창경원으로 개설하였다. 임금이 기거하는 궁궐을 유원지로 전락시킨 일제의 의도가 분명하다. 신성한 곳을 동식물의 분변으로 더럽히고 관광객들의 발길에 짓밟히도록 하여 우리를 욕되게 하기 위함이다. 다행이 1983년 동. 식물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창경궁 본래의 이름으로 복원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끝임 없이 우리민족을 괴롭혔다.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정유재란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줬던가. 인명피해는 물론 문화재 소실, 도공납치 등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안겨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조선말기 세력이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36년간 우리를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 인적, 재산피해는 물론 우리민족 말살정책으로 우리말도, 우리이름도 말살시켰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해방이 되어 우리 국권을 찾았지만, 일제 청산을 못하여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현실이다. 청산을 못한 결과로 극심한 사회분열이 오늘까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최고지도자란 사람이 왜 지나간 일을 가지고 미래를 망치느냐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어찌 과거가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있으며 현재가 없는 미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편향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의 영향으로 ‘보지도 못한 할아버지가 겪은 일은 왜 우리가 짊어져야 하느냐’고 하는 추종자가 있을 정도다.  

  그런 말을 들으니 모든 면에서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운명이 다한 것 인가 하는 끔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어떡해야 그런 이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을까? 역사 공부의 부재다. 우리나라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독립유공자들의 사료를 더 발굴 보급시키고, 국민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우리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험에서 역사와 국어를 더 우선시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5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창경궁을 보면서 새롭게 역사의식을 다짐해 본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라며 철수 했다는 말이 섬뜩하게 스쳐온다. 과거를 잊고 저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언젠가 또 같은 수모를 겪을 수 있다. 사람의 성격이 바뀌지 않듯이 저들의 호전적인 침략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헌법을 바꿔 또 다시 호전성을 살리려 하지 않는가. 그나마 창경궁이 본래의 상태로 복원되는 모습에 흐뭇하다. 아직도 복원이 완료되지 않아 곳곳에 잔디밭으로 남아 있는 곳이 많지만, 원상태에 최대한 가깝게라도 복원하여 우리 유산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일이다. 다시는 외적의 침입으로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소실되지 않도록 보다 많은 국민들이 역사와 문화재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더위에 힘든 하루였지만 선조들이 겪은 고난과 민족혼을 되새기며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 문화탐방이 기대되어 벌써부터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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