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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5(숭례문)구간 & 경희궁을 다녀와서

  • 2023-09-26
  • 조회수668
2023 충북참여연대 문화위원회 역사기행
 
한양도성 5(숭례문)구간 & 경희궁
 
-충북참여연대 문화위원위원장 전금희-

*충북참여연대 문화위원회는 올해 한양도성을 총 6차례와 심산유곡 암자 기행을 2차례 진행합니다.
매달 진행되는 한양도성 기행과 암자순례 후기를 연재합니다.
매달 셋째주 토요일 진행되니 관심있으신 회원님들의 참여 부탁 드립니다.
 
이 구간은 백범광장에서 돈의문 터까지다. 다른 구간보다는 성벽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드문드문 보였지만 볼거리는 많다. 남대문 시장 옆을 지나 남대문에 다달았다. 큰애가 초등학교 다닐때 와보고 이번에 다시 같이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 화재 전인 당시와 화재복구 후인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남대문 양쪽 성벽이 마저 완성됐다는 점이다. 아쉬운 것은 남대문의 화재의 범인이 창경궁 안의 문정전에도 화재를 일으킨 자다. 고령이라고 죄를 봐준 댓가는 혹독했다. 전국민이 아쉬워하며 우리나라의 국보 1호가 타들어가는 광경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저편이 아리다.
 
정동 일대는 개화기 서양문물의 중심이 된 곳이다.
서울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평안교회를 거쳐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 들렀다. 이곳엔 배재학당을 설립한 초기선교사인 아펜젤러의 동상이 있다. 배를타고 가다가 충돌로 물에 빠진 한 여학생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어서인지 그의 동상 하부는 배모양이다. 일본의 침략을 묵인해주는 조건으로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선교사라는 말이 그리 달갑진 않았지만, 자신을 버리고 남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표지판 글귀에 조금은 숙연해졌다.
 
역사가 오래된 강북의 모습을 수채화로 그려 전시해놓은 수십점의 작품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그림을 보며 내안에 있는 수채화를 그려보고픈 욕구를 살며시 들춰보았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었는데...
 
'고종의 길'이라고 명시된 길은 도로길이 아니고 좁은 골목길이다. 고종이 중명전에 몇 년간 거주하셔서 그 주변의 길만 고종의 길로 지정한 모양인데 좁은 골목길만 지정해놓은 것이 조금은 아쉽다. 중명전은 을사늑약의 현장이 이뤄진 곳이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고 대한제국이 독립적인 국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오라는 특명을 3(이준, 이상설, 이위종)에게 내렸다. 그들의 노정은 유라시아 동서를 거쳐서 헤이그에 이르렀으나 아무도 고종앞에 다시 돌아오진 못했다. 이상설은 임무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요즘은 그런 사람이 있을까? 애국심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앞선 세상이 서글프다. 더구나 그런 독립군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가해자의 입장에 선 국가의 지도자에 분노가 인다.
 
각국의 공사관들이 있는 공원을 지나 노천광장에 이르니 노천광장의 계단이 한양도성의 성벽을 허물고 만들어진 것이란다. 어의가 없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 정치를 하면 이런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 만다.
 
이외에도 정동교회 이화학당, 경성재판소, 성공회, 덕수궁, 경희궁 등 정동엔 많은 근대의 역사적 건물들이 있다. 경희궁은 숙종이 태어나고 승하한 궁인데 영조, 순조도 이곳에서 승하했단다. 조선의 5대 궁궐 중의 하니지만, 뒷쪽의 자정전 쪽으로는 터가 넓지 않고 계단이 높아 걷기에 적잖이 인내심이 필요했다. 당시에 키가 작았던 이들은 얼마나 오르내리기가 더 힘들었을까.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뒤에 일월오봉도가 그려져있는 용상에 앉아보았다. 나도 모르게 임금님이 된 듯 자세를 고치고 눈동자에 힘을 주고있었다. 임금님의 권위가 느껴지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실감난다.
 
오는길엔 잠시 인사동 박수훈 선생님의 갤러리에도 들렀다. 작품이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전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작품도 워낙 대작이었지만, 특히 신동엽의 대서사시인 '금강'의 작품이나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은 그분의 작품세계를 잘 알려준다. 작품으로서 자연스럽게 현대판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들 작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 국민들도 조상의 동학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결기를 제발 잊지 말고 꿋꿋이 이어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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